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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생각법

배민사화

"플랫폼의 생각법"을 쓰고 나서 받았던 가장 많은 질문은 한국에 성공적인 플랫폼은 없느냐였다. 아쉽게도 네이버나 카카오가 플랫폼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에 자신 있게 한국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양면시장을 지향하고 경쟁을 통해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그러면서도 착한 플랫폼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플랫폼의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배달의민족(배민)이 눈에 띄었다.

 

배민은 음식 배달이라는 영역에서 어플을 통해 전형적인 양면시장(식당과 손님)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시장의 60%를 장악하면서 준 독점적인 위치까지 성장하기 시작했다. 플랫폼 시장에서 배민과 요기요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보다 나은 플랫폼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다양한 솔루션(도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민 라이더가 나타났고 배민 커넥트가 도입되었다. 양면시장의 참여자인 식당, 그리고 소비자들에 플랫폼 도구라 할 수 있는 라이더가 나타나면서 경쟁의 양상은 누가 보다 많은 라이더를 보유할 수 있느냐가 경쟁의 중심이 되는 듯했다. 배민은 100여 명이 이르는 개발자를 통해 라이더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개발해내고 있었지만 플랫폼 간의 경쟁은 매력적인 도구를 만들어내는 경쟁에서 라이더 인센티브를 통한 규모의 경쟁으로 확산되었고 배민의 수익성은 다시 곤두박질하게 된다. 2018년 525억이라는 이익은 2019년 364억이라는 적자로 돌아섰고 배민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원이 필요되었다.

 

이 모든 상황이 배민으로 하여금 합병이라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한국의 배달 시장은 드디어 하나의 플랫폼 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비록 정상적인 경쟁을 통해 하나의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플랫폼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까지 양면시장과 독점이라는 플랫폼의 원칙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배민이 합병 이후에 기존의 광고 방식의 수익모델을 수수료 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플랫폼의 수익모델을 보면 광장형과 시장형으로 나뉜다. 광장형은 많은 트래픽을 바탕으로 광고라는 수익모델이 가능하다. 구글의 일 검색건수 60억 회, 페이스북의 일사용자 16억 명은 광고라는 수익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시장형은 트래픽이 제한되기에 수수료라는 모델이 필수적이다. 즉 방문보다는 거래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에 아마존과 같은 커머스 플랫폼, 우버 에어비엔비 같은 공유 플랫폼들은 수수료에 의존하게 된다. 광장 플랫폼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트래픽으로 광고라는 수익모델은 쉽게 성장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배민이 이 함정에 빠진 것이다. 

배민의 시작은 수수료였다. 12.5%(카드 수수료 포함)라는 배민의 플랫폼 수수료는 사업이 초기에 성공하면서 많은 반발을 가져왔고 이에 배민은 수수료 무료를 선언하면서 플랫폼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 무료 수수료는 플랫폼을 개방시켰고 그 결과 양면시장의 참여자, 특히 공급자 시장의 성장은 눈부시게 이뤄졌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배민은 수수료 체계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성장의 한계도 문제일 수도 있고 합병 시 계약 조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민이 간과한 것은 자신이 이미 독점이라는 플랫폼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는 점이다. 즉 독점의 단계에서는 성공한 플랫폼으로 돈이 아닌 무언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고 있는 것이다. 아니 역으로 배민은 독점을 달성하자마자 돈 이야기부터 꺼낸 것이다. 플랫폼 참여자들의 질타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독점을 규제하는 정부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왜 구글이 풍선을 띄워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으로 보내는지, 왜 페이스북이 지역 저널리즘을 살리려 노력하는지 아마존이 왜 수익을 희생하며 당일배송을 실현하려 하는지를 배민은 이해해야 한다. 독점에 이른 플랫폼의 행동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배민 사화라 부른다. 어쩌면 배민이라는 기업에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