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플랫폼의 미래, 서브스크립션"을 읽고 문득 구독 경제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약간의 공부를 위해 추천을 받아서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을 읽어보았다. 약간 이른 감은 있지만 이 두 권에 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구독 경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아직 충분한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이해하지 못하면 실행하지 못한다는 철학에 근거하여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볼 생각이다.
먼저 이 책의 영어제목은 “Subscribed”이고 역시 한글로 번역하면 “구독되다” 뭐 이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Subscribe라는 동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92년 이동전화 사업 관련 일을 하면서 외국인 컨설턴트로부터 Subscriber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인 것 같다. 물론 그전에 Vocabulary 22000이나 33000에서 공부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에서 의미 있게 접한 것은 그때로 기억된다. 즉 Subscriber는 통신 서비스의 가입자를 일컫는 단어였이다. 이동전화는 전형적인 서비스이고 이 서비스를 가입, 혹은 구독하는 행위를 subscribe라고 쓰고 가입자를 subscriber로 정의했던 것이다. 결국 이 구독이라는 단어는 서비스의 제공을 의미하고 그 의미는 아마도 계속해서 케이블방송과 같이 실물이 아닌 서비스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구독이라는 사업형태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 “구독경제”라는 단어를 다시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다. 먼저 IT업계의 구독 모델로의 진화는 괄목할 만하다.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방식이 제시되면서 IT 시스템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투자된 시스템을 빌려 쓰는 방식이 대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기간단위 구독인 경우도 있고 사용량 단위 구독의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구독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IT 시스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MS나 어도비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지 않고 기간단위 사용으로 전환하는 것도 동일한 이런 의미에서 구독이다. 즉 이 모든 경우는 IT에 관련된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구매를 하여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빌려 쓰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IT 영역에 이런 변화가 급격하게 밀어닥친 이유는 이 산업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IT와 관련하여 이런 형태의 서비스는 이미 많은 영역에서 소비자를 대상으로도 구현되어 왔다. 개인용 클라우드 서비스나, 음악 서비스, 영상 서비스 등의 디지털 서비스들은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구독 서비스이다. 즉 디지털과 모바일이 일상화되면서 많은 디지털 서비스들이 개인과 기업들에게 구독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구독 경제를 여기까지로 한정하면 이야기는 간단하고 상식적이다. 하지만 보다 실물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문제는 좀 복잡해진다. 그 복잡해지는 이유는 대상이 되는 실물 제품이 갖는 “마모”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상품이야 빌려 쓰든 공유 하든 가치가 감소하지 않지만 실물제품은 빌려 쓰거나 공유하면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모를 무시한 구독형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책에서도 열심히 예로 들고 있는 Porsche Passport(포르쉐 구독 서비스)를 살펴보자. 포르셰 패스포트는 매달 일정 금액(일반형 2100불, 고급형은 3100불, 세금 별도)을 내고 원할 때마다 포르셰를 바꿔 탈 수 있는 서비스이다. 차를 바꾸고 싶으면 집이나 사무실로 가져다준다. 포르셰를 빌려주는 회사가 자동차를 소유하니 보험, 세금, 유지비(가솔린 제외)는 모두 회사의 몫이다. 1억이 넘어가는 고가의 자동차를 소유하는 방식에서 빌려 쓰는 방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 경우도 구독 서비스의 사례로 넣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모든 면에서 위에서 언급된 디지털 서비스의 구독 형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자동차도 아이오닉이라는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월 275불에 구독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구독 서비스라 이야기하기에는 약간 애매하다.
여기서의 문제는 서비스 이탈비용이다. 포르셰 패스포트 서비스는 이탈 비용이 없다. 그냥 가입 시에 595불을 내는 것만 포기하면 된다. 물론 해지 후에 새로이 가입할 때 595불을 또 지불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탈 비용은 거의 없다. 아무때건 그만 사용하고 싶으면 해지 통보하면 된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가입서비스는 24개월 혹은 36개월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탈 비용이 있어 보인다. 모양새는 조금 진보된 혹은 강화된 렌털 서비스로 보인다.
미국에서 현대차 아이오닉의 사례를 일단 두고 이러한 맥락에서 렌탈이라는 개념으로 들어가 보자. 일단 자동차산업에는 이미 렌털의 개념이 존재한다. 현대자동차의 모든 차량은 판매시점에 렌털에 대한 옵션이 제시되고 이를 현대캐피털이 처리한다. 즉 구매 시의 금융이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유권도 차주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니 현실적으로 보면 조금 애매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탈 비용이 어마어마하니 소유권(혹은 책임)이 구매와 동시에 차주에게 넘어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즉 우리가 아는 자동차 렌털은 구독 경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이탈 비용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렌털의 해지비용은 해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가 홈쇼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렌탈 모델(냉장고, 안마의자 등)이나 웅진코웨이 코디들을 통해 렌털 하는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구매를 돕는 금융서비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웅진 코웨이의 매트리스 렌털을 보면 의무약정기간은 6년이고 이탈 비용이 남아있는 금액의 20%로 제시되어 있다. 매트리스 가격이 340만 원이니 가속상각을 하지 않으면 매년 57만 원 꼴이다. 1년이 지난 후 만족도가 떨어져서 해지를 하면 해지 위약금 57만 원을 내야 한다. 매트리스 일 년 쓰는데 114만 원을 지불한 것이다. 매트리스를 빌려 쓰는데 한 달에 45,900원을 내는 것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해지라는 상황이 발생하면 뭔가 큰 손해를 본 느낌이다. 정수기 모델은 필터 교체라는 서비스가 추가되니 운영상으로는 구독 경제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여전히 이탈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포르셰 패스포트처럼 상품을 원할 때 빌려 쓰는 모델은 분명히 아니다. 단지 3백만 원이 넘는 매트리스를 구입할 때 할부로 구입할 수 있게 금융을 연결해주었을 뿐이다. 이런 렌털 모델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와 분석은 추후에 올리도록 하겠다.
즉 구독경제와 기존의 렌털 서비스를 구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탈 비용의 존재 유무일 것이다. 고객의 이탈을 계약으로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와 상품의 매력도로 묶어 놓는 것을 구독 경제의 핵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편안하다. 구독 경제가 가져온 것은 기업과 고객 간의 관계를 원 포인트에서 멀티포인트로 바꿔 놓은 것이다. 큰 의사결정 한 번으로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서비스 제공을 통해 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구독 경제인 것이다.
이 책에서 애플이 앞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하드웨어와 가입형 상품, 애플 뮤직, 애플 tV Plus, 등을 결합한 가입형 상품을 출시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에 애플의 이런 형태의 상품 출시의 개연성은 충분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해보면 구독경제가 다양한 영역에서 강조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구매보다는 빌려 쓴다는 개념에서 구독이라는 개념이 더 접근성이 높고 상품을 제공하는 사업자 입장에서도 부정기적 판매를 통한 수익의 확보보다는 안정적인 수입의 확보라는 맥락에서 구독 경제는 의미 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영역이 구독 경제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도 구독 경제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구독 경제와 공유경제는 어떻게 구분되나? 구독과 플랫폼은 또 어떻게 연결되나.. 등 다양한 질문들이 추가적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차근차근 해보도록 하겠다.
이해하지 못하면 행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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